Homo Underliner: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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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언더라이너’에 담기에는 적합치 않은 책이라 생각했지만 내 독서 패턴을 고려할 때 이런 류의 책을 배제하면 차, 포 떼고 장기를 두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이 책은 전도유망했던 신경외과 레지던트 폴 칼라니티가 급작스런 폐암 선고를 받고 짧은 생을 마치기까지의 기록이다. 죽음이라는 궁극적인 이별, 그 망연자실함 속에서 다시 몸을 추스리고 중심을 잡아야 할 때 이 책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

재능과 자신감이 넘치던 한 젊은이에게 삶은 예측 가능하고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한 것이었다.

pp 165-166
“저는 40년의 인생계획을 짰어요. 첫 20년은 외과의사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폐암은 순식간에 그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빼앗아 버렸다.

p 166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하네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

이제는 시간조차 건강할 때와 다르게 흘러간다.

p 231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팽창한다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수축될까? 분명 그렇다. 내가 보내는 하루는 엄청나게 짧아졌다.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 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팽창하던 시절, 하루에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레지던트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시절의 폴 칼라니티는 좀 특별한 의사였던 것 같다.

p 112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환자가 치명적인 두부 출혈로 병원에 들어올 때, 신경외과의와 나누는 첫 대화는 환자의 가족이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자를 평화롭게 보내줄 수도 있고(“천명이 다해서 떠난거야), 아니면 결코 아물지 않는 회한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 의사들은 우리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어! 그 아이를 구하려 는 시늉조차 안 했다고!”).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뿐이다.  

p 198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p 120
뇌암 가능성을 들은 두 사람에게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까 싶었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 하다.

p 116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녀는 힘겹지만 납득할 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았다. 그녀는 수술을 선택했고,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이틀 뒤에 퇴원했으며 다시는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

병으로 인해 정말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폴 칼라니티의 특별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다. 망자를 보내는 데 있어서의 미숙함은 ’아물지 않는 회한’을 만들고 이는 살아남은 사람에게 평생 가는 흉터로 남는다. 죽음을 늘상 대하게 되는 의사만큼 망자를 보내는 데에 있어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익숙함을 미숙한 사람들에게 베푼다면 특별하고 소중한 의사가 아니겠는가.

죽음은 개인의 것이지만 가족의 것이기도 하다. 부부의 ‘최고 상태’가 도달해 있는 지점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아내(루시)의 정확한 해석은 ‘잘하고 있는 일이  한가지는 있다’는 남편의 긍정적인 해석과 교차하면서 더 없이 슬픈 장면을 만들어 낸다.

p 167
“음, 두분은 제가 본 어떤 부부보다도 잘 대처하고 계세요.” 첫 만남을 마무리하면서 상담사가 말했다. “제가 두 분 에게 드릴 조언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요” 나는 상담실을 나오면서 씩 웃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일이 아직 한가지는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니까. 수년간 말기 암 환자들을 보살폈던 보람이 조금은 있구나! 나는 루시를 돌아봤다. 미소 짓는 얼굴을 기대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당신 아직도 모르겠어?” 루시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 상태가 최고라는 건, 더 나아질 게 없다는 뜻이 잖아.” 

이 와중에 폴과 루시는 고민 끝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p 173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야 둘 다 간절했지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시는 내게 몇 년의 시간이 더 남아 있기를 바랐지만 내 예후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남은 시간을 아버지로 보낼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최종적으로 내가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옆에 누워 있던 루시가 물었다. “여보, 가장 무섭거나 슬픈 일이 뭐야?” “당신하고 헤어지는 거.” 나는 아기가 생기면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내가 죽은 뒤 루시에게 남편도 아기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최종적인 결정은 루시가 내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녀 혼자 아기를 키워야 할 텐데, 내 병이 악화되면 나까지 돌보느라 더 힘들 것이었다…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렇게 태어난 딸 케이디에게 저자가 남긴 메시지는 딸에 대한 고마움이다. (아… 갑자기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p 234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다.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내게 죽음이라는 주제는 ‘가족’이라는 삶의 단위,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존재한다. (나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대면하는 시점까지만 유효한 관점일 수도 있겠다.) 가족에게 더 잘 하자.

사족: 경제/경영서가 아닌 책에서 고객사의 브랜드(아바스틴, 타세바)가 등장해 반가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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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Underlines

p 223
나는 의식이 뚜렷할 땐 불협화음을 내는 여러 목소리들을 날카롭게 의식했다. 의학에서는 이를 WICOS(Who Is the Captain of the Ship: 이 배의 선장은 누구인가?) 문제라고 한다. 신장병 전문의와 중환자 전문 치료사와 종양학 전문의와 위장병 전문의가 제각기 다른 의견을 냈다.

p132
최고참 레지던트가 되자 나는 거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성공과 실패의 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주어졌다. 실패하면 괴로웠고,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p 135
2밀리미터를 더 자르면, 환자는 눈을 깜빡이는 것 말고는 완전한 마비 상태가 된다. 담당의는 현미경에서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이걸 아는 건 이 수술을 하면서 세 번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일세.”

p 197
프로이트는 성공한 신경과학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을 이해하려는 그의 진정한 야망을 신경과학이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한 세기는 더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현미경을 한쪽으로 치웠다.

p 136
피질 중에서 가장 침범해선 안 되는 곳은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이다. 보통 좌뇌에 있는데,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라 불린다. 전자는 언어의 이해를, 후자는 언어의 표현을 담당한다.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남의 말을 이해하더라도 본인은 말을 하거나 쓸 수가 없다.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되면 말은 할 수 있지만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환자가 하는 말은 서로 무관한 단어, 구절, 이미지의 나열이 되어버린다. 의미 없는 문법이되는 것이다. 두 영역이 모두 손상되면 환자는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영원히 빼앗긴 채 고립된다.

pp 142-143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 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돈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p 200
분명 오컴의 면도날은 맹목적인 신앙으로부터 신자들을 해방시켰다. 신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으니 신을 믿는 건 비이성적인 일이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조롱하는 게 분명한 이런 구절들을 접하면서 나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 났다. 대학 입학 이후 오랫동안 하느님과 예수에 대한 내 생각은 점잖게 말하자면 좀 심드렁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시절, 나는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논리로 기독교 신앙을 공격했다. 기독교의 가르침보다는 계몽된 이성이 더 논리 정연한 우주를 보여주었다.

p 202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핵심적인 감정과 과학 이론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어떤 체계도 인간 경험을 온전하게 담을 수 없다. 형이상학은 계시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p 203
원죄의 기본적인 메시지는 늘 죄책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선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항상 거기에 맞춰 살지는 못한다.” 결국 이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이다. 설사 당신이 구약성경의 레위기를 잘 안다 해도 그대로 따르며 살 수는 없다.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다.

p 116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 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 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뜻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까?

p 116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 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p 122
병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침묵을 지킨다. (patient 라는 단어의 초기 뜻 중 하나는 불평 없이 곤경을 견디는 자이 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건 충격 때문이건 보통은 아무말 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곧바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간혹 있다(대개는 환자 본인보다 배우자) “우리는 싸워서 이겨낼 거예요, 선생님.” 그들은 기도에서부터 재산, 약초, 줄기세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에 기댄다.

p 113
가족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온전하고 생기가 넘치는 독립적인 사람)은 이미 과거의 사람이고, 환자가 어떤 미래를 원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들이 가진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했다. 편안한 죽음을 원할까 아니면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액체가 들어가고 나오는 여러 주머니들과 끈을 매달고 연명하는 삶을 원할까.

pp 121-122 (여기서도 프레이밍이 등장한다.)
정확한 것도 중요하지만, 희망의 여지는 반드시 남겨둬 야 한다. ‘평균 생존 기간은 11개월입니다’, ‘2년 안에 사망 할 가능성이 95퍼센트입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대다수 환자가 수개월부터 2~3년까지 생존합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이 환자는 6개월 만에 사망할 것인가, 아니면 60개월 만에 사망 할 것인가? 필요 이상으로 정확성을 기하려고 하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 의사들이 있는데(“의사 선생님이 나한테 6개월 남았다고 했어요”), 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이며 누가 그런 수치를 가르쳐 주는 건지 나는 너무나 의아했다.

p 262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 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의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혼 생활을 잘 영위하여 이 과정도 충실하게 헤쳐나가는 것이다.”

 

Author: Official PEAK15

충분한 가치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마케팅과 브랜딩의 문제로 정상에 서지 못하고 있는 기업고객을 위해 Consulting과 Facilitation Service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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