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Underliner: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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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신이 된 동물’로 변모하는 7만년의 세월을 담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압권이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사피엔스]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이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때문에 두 권의 책은 상, 하권으로 읽어도 큰 무리가 없다.

[호모 데우스] 의 <찾아보기>를 참고해서 저자가 반복적으로 언급한 주요 개념들을 확인해 보면, 감정, 과학자, 그리스도교, 뇌, 돈, 마음, 생명, 성직자, 신, 신성, 알고리즘, 역사, 의식, 인본주의, 진화, 컴퓨터 정도가 잡힌다. 이중에서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알고리즘’을 꼽을 것 같다.

pp 122-126
‘알고리즘’은 오늘날 세계에서 단연코 가장 중요한 개념일 것이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이해하려면 알고리즘이 무엇이고 그것이 감정과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알고리즘은 특정한 계산이 아니라 계산할 때 따르는 방법이다…. 몸이 곧 계산기이다. 감각과 감정이라는 것은 실은 알고리즘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들을 포함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의 99퍼센트는 감각, 감정, 욕망이라고 불리는 매우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이루어진다.

컴퓨터, IT 세계의 용어였던 알고리즘은 인간 자체로 확장된다.

p 450
생명과학은 이렇게 주장한다.

  1.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즉 인간은 여러 알고리즘들의 집합으로 단일한 내적 목소리 또는 단일한 나는 없다.
  2. 인간을 구성하는 알고리즘들은 자유롭지 않다. 이 알고리즘들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유의지가 아니라 결정론적으로 또는 무작위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3. 앞의 두 전제로부터, 이론상으로 외부의 어떤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 자신에 대해 훨씬 더 잘 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내 몸과 뇌를 구성하는 시스템 각각을 관리 감독하는 알고리즘은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런 알고리즘이 개발되면 유권자, 고객, 보는 사람(번역 이상함)의 눈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알고리즘이 가장 잘 알고, 알고리즘이 항상 옳고, 알고리즘의 계산에 아름다움이 달려 있게 될 것이다.

불편한 주장이다. 인간 혹은 자아(감정, 마음, 의식, 욕망…)가 알고리즘의 집합이라니. 책의 많은 부분은 이 불편한 진실(주장)을 입증하는 데 할애된다.

p 149
‘개인 individual’이라는 영어 단어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나누어질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개인’이라는 말은 내 ‘진정한 자아’는 따로 떨어진 부분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체라는 뜻이다.

p 399
과학은 자유주의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도 약화시킨다. 자유주의자들은 우리가 분리할 수 없는 단일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개인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내가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여 나 자신과 닿으려 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 단 하나의 분명하고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몇 십년 동안 생명과학은 이런 자유주의 이야기가 완전히 신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좌뇌에는 언어능력뿐 아니라 내면의 통역사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내면의 통역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납득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부분적인 단서들을 이용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이다.

pp 404-405
(대니얼 카너먼의) 이 찬물 실험은 매우 간단하지만, 그 함의는 자유주의 세계관의 근간을 흔든다. 이 실험은 적어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바로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참조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야기를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고, 대개 중요한 순간과 최종결과만을 이용해 이야기를 엮는다. 경험 전체의 가치는 중요한 순간과 결말의 평균으로 결정된다.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해 왔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은 각 개인의 알고리즘에 ‘지적 설계’가 개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나와 별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로 보이지만 이미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겠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p 499
내면에 귀 기울이라는 인본주의의 권고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친 반면, 적절한 용량의 적절한 화학물질은 수백만 명의 행복감을 높이고 관계를 개선했다.

p 451
앞으로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소망에 따라 인생을 운영하는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네트워크로 얽힌 전자 알고리즘들의 관리와 인도를 받는 생화학적 기제들의 집합으로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나를 완벽하게 알고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 외부 알고리즘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실수를 덜 하는 외부 알고리즘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알고리즘에게 나에 관한 점점 더 많은 결정과 인생의 선택들을 맡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pp 455-456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 절제술 관련) 그녀는 유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그 목소리는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이야기했다. 당시 졸리는 통증도 불편함도 없었다. 그녀의 내면은 오히려 이렇게 속삭였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하지만 졸리의 의사가 사용한 컴퓨터 알고리즘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하지만, 당신의 유전자에는 시한폭탄이 있다. 당장 조치를 취해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알고리즘이 내 삶에 신탁을 내리고 마침내 주권자가 되는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현실적이다.

p 468
웨이즈(GPS 기반 내비게이션 어플리케이션)는 주권자가 될 것이다. 엄청난 힘을 쥐고 우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된 웨이즈는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의 욕망을 주무르고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웨이즈가 너무나 훌륭해서 모든 사람이 사용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1번 도로는 막히지만 2번 도로는 비교적 소통이 원활하다고 가정하자. 웨이즈가 모든 운전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면, 모든 운전자가 2번 도로로 몰려 결국 그 도로도 막힐 것이다. 모두가 같은 신탁을 이용하고 모두가 그 신탁을 믿을 때, 신탁은 주권자로 변한다. 그리하여 웨이즈는 우리 대신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2번 도로가 소통이 원활하다는 것을 절반의 운전자들에게만 알려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이 정보를 비밀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2번 도로를 막히지 않게 하면서 1번 도로의 체증을 해소할 수 있다.

더 나은 알고리즘의 혜택을 받는 대신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p 463
이런 충실한 상담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분할할 수 없는 존재이며 각 개인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이 인생의 의미인지 결정할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개념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이야기하는 자아가 꾸며내는 이야기들의 지시를 따르는 자율적 실체들이 아니라, 거대한 전지구적 네트워크의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될 것이다.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과학은 단지 미래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따금씩 역사학자들이 예언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다. (p 91)” 저자가 반복이 아닌 해방을 위해서 던지는 핵심 질문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예측은 다음과 같다.

P 544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와 예측)우리가 생명이라는 실로 장대한 관점으로 본다면, 상호 관련된 다음의 세 과정 앞에서 다른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작게 보일 것이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해방을 위한 질문)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가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1에 대해 저자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2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것 같다. 그의 핵심 질문은 3번이다. 3번의 질문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예측은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p 441
사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대체하기가 점점 더 쉬워지는데, 알고리즘이 더 영리해지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이 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천 년 동안 인간은 점점 전문가가 되었다. 택시 기사나 심장전문의는 수렵채집인에 비하면 훨씬 좁은 분야의 전문가라서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가 더 쉽다.

p 435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p 473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의 권한 이동은 주변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것은 정부의 중대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평범한 선택들의 저항할 수 없는 흐름 때문이다… 개인은 빅브라더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조용히 붕괴할 것이다.

p 497
시스템은 다운그레이드된 사람들을 선호할 텐데 그것은 그런 사람들이 가지게 될 초인간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시스템을 방해하고 속도를 떨어뜨리는 성가신 성질을 갖고 있지 않아서이다. 모든 농부들이 알고 있듯이, 염소 무리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대개 가장 똑똑한 염소이다.

p 513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우리는 기술이 정치보다 한발 앞서 우위 점하는 인터넷 같은 혁명들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은 곧 우리 사회와 경제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까지 앞지를 텐데도, 우리의 정치적 레이더망에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다. 현재의 민주적 구조들은 관련 데이터를 충분히 빨리 수집해서 처리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적절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생물학과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전통적인 민주정치는 중요한 사건들을 제어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유의미한 비전들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책에 대한 요약은 이 정도로 마치고 개인적인(또는 사업적인) 관심, 고민과 연결되는 텍스트는 이런 것들이었다.

A (p 217)
현실에서 협력 네트워크의 힘은 진실과 허구의 절묘한 균형에 달려 있다. 실제를 지나치게 왜곡하면 명료한 시야를 잃게 되어, 더 명료한 눈을 가진 경쟁자들을 이길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허구적 신화에 의존하지 않고는 대중을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허구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실제를 고집한다면 그를 따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B (p 264)
철학의 우아한 영역에서 내려와 역사적 실제들을 보면, 모든 종교 이야기들이 거의 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와 같은 윤리적 판단.  2. ‘인간의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 시작한다’ 같은 사실적 진술. 3. ‘수태되고 단 하루가 지났어도 절대 낙태해서는 안 된다’같은, 윤리적 판단과 사실적 진술을 융합해서 얻은 실질적 지침.

C (p 292-293)
체스 같은 전근대 게임은 정체된 경제를 기본전제로 했다. 처음에는 말 열여섯 개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고 게임을 마칠 때도 말이 더 많아지지는 않는다…. 체스 경기자는 투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반면 현대의 보드게임과 컴퓨터게임들은 대부분 투자와 성장에 중점을 둔다.

D (p 523)
데이터교는 한가한 예언으로 그치지 않는다.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실용적 계명들을 갖고 있다. 데이터교도들에게 내려진 첫 번째 계명은 ‘가능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한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교 역시 포교를 한다.

A, C, D는 사업을 운영하는 나의 관점, 포지셔닝, 태도와 연결된 고민이 반응한 텍스트들이다.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성장과 확장을 염두에 두지 않는 현재의 스탠스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의 알고리즘은 ‘의식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탁을 내리는 것 같다.

B는 공공영역에서 메시지를 개발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읽혔다.

 

Other Underlines

p 15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는 데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자연의 불가해하고 통제 불가능한 폭력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p 39
성공은 야망을 낳는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p 90
1016년에는 1050년의 유럽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는 것이 비교적 쉬었다 … 반면 2017년의 우리는 2050년에 유럽이 어떤 모습일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정치제도를 갖게 될지, 어떤 직업시장이 형성될지는 물론, 사람들이 어떤 몸을 가질지조차 말할 수 없다.

p 121
생존과 번식에는 불필요하다 해도, 그 동물의 주관적 관점에서는 수천 세대 전에 형성된 필요를 계속 느낀다는 것, 이것이 진화심리학이 주는 교훈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농업혁명은 동물들의 주관적 필요를 무시하면서도 그들의 생존과 번식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을 인간에게 주었다.

p 158
과학의 멋진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과학자들이 어떤 것을 알지 못할 때 온갖 종류의 이론과 추측을 시도해볼 수 있고 그러고도 결국에는 모른다고 시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p 189
당신이 혁명을 시작하고 싶다면, “몇 명이나 내 생각을 지지할까?”라고 묻지 말고 “내 지지자들 가운데 몇 명과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라.

p 197
연구조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150명 이상의 사람들과는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한다.

pp 204-205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재가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이며 제3의 옵션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재에는 제3의 층위가 존재한다. 그것은 상호주관적 실재이다. 상호주관적 실재들은 개개인의 믿음과 느낌보다는 여러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면 가치가 증발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법, 신, 심지어 제국 전체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p 277
근대성은 일종의 계약이다…. 사실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계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즉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p 285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같은 전통 종교들은 수중에 있는 자원 내에서 현존하는 파이를 재분배하거나 천국의 파이를 약속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면 근대 이후 사회는 경제성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확고한 믿음 위에 서 있다.

pp 290-291
저 세상의 파이를 약속하는 종교들과 달리, 자본주의는 지상의 기적을 약속한다…. 자본주의 사람들이 네 이윤이 곧 내 손실인 제로섬 게임이 아닌, 네 이윤이 곧 내 이윤인 윈윈 상황으로 보게 함으로써 세계 화합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pp 326-329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성경*논리였다…
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경험적 데이터*수학이다….
그런데 인본주의가 여기에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으면서 윤리적 지식을 획득하는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지식=경험*감수성이다.

pp 342-344
인본주의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인간은 저마다 독자적인 내적 목소리와 재생 불가능한 일련의 경험을 소유하는 유일무이한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개인에게 세계를 경험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고, 본인의 진면목을 표현할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한다… 개인이 많은 자유를 누릴수록, 세계는 더 아름답고 풍요롭고 의미로 충만할 것이다. 이렇게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 정통 분파를 ‘자유 인본주의’ 또는 간단히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가 사회적 신망과 정치적 힘을 얻으면서 서로 매우 다른 두 분파가 생겨났다. 바로 수많은 사회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와 나치를 가장 유명한 신봉자로 둔 진화론적 인본주의이다. 이 두 분파는 인간의 경험이 의미와 권위의 최종 원천이라는 데는 동의했다. 그리고 둘 다 초월적인 힘이나 신성한 경전을 믿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자와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경험이 개인적 현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에는 많은 개인이 존재하고, 그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느끼고 서로 상충하는 욕망을 품는다. 만일 모든 권위와 의미가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다면 각기 다른 경험들 사이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pp 379-381
물론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그밖에 다른 전통 종교들은 아직까지 이 세계의 주역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된 역할은 반작용이다.  과거에 이 종교들은 창조적인 힘이 있었다. 예컨대 그리스도교는 당시에는 이단적인 개념이었던,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개념을 확산시켰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정치구조, 사회적 위계, 심지어 젠더 관계까지 바꿔놓았다…. 스스로 자문해보라.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발견, 발명, 창조가 무엇이었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후보 목록이 많이 고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자문해보라. 20세기에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 같은 전통 종교들이 이뤄낸 가장 영향력 있는 발견, 발명, 창조는 무엇인가? 이것 역시 매우 어려운 질문인데, 고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p 412-415
우리는 상상 속 이야기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할수록 그 환상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그 희생과 자신이 초래한 고통에 필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치학에서 이런 현상을 ‘우리 아들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증후군으로 부른다…. 환상을 갖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것은 그것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p 424
오늘날 많은 비대칭전에서 이미 시민들 대다수가 진보한 무기들에 대한 인간 방패 역할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p 473
완전히 새로운 위협에 직면할 때조차도 우리는 지난 날의 적에 대한 방어를 멈추지 않는다.

p 477
20세기 의학의 목표는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의학의 목표는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 쪽(업그레이드)으로 가고 있다.

p 485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과 경험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서구의 Western 많이 배우고 Educated 산업화되고 Industrialized 부유하고 Rich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에 사는 사람들 WEIRD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사실 이들은 인류를 대표하는 표본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간 마음에 대한 연구는 호모 사피엔스가 곧 호머 심슨이라고 가정했다.

p 504
데이터교는 학문의 전통적 피라미드를 뒤집는다.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지적 활동이라는 긴 사슬의 첫 번째 단계에 불과했다. 인간이 데이터에서 정보를 증류하고 정보에서 지식을 증류하고 지식에서 지혜를 증류해야 했다. 하지만 데이터교도들은 인간이 더 이상 막대한 데이터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고, 따라서 지식과 지혜를 증류하는 것은 고사하고 데이터에서 정보를 증류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p 505
오늘날에는 개별 유기체들만이 아니라 벌집, 박테리아 집단, 숲과 도시 같은 사회 전체가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간주된다. 경제학자들도 점점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경제학을 해석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경제란 욕망과 능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그 데이터를 결정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한다.

p 517
데이터교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은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고,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 전체를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방법으로 주도된다. 1. 프로세스의 수를 늘린다…. 2. 프로세서의 다양성을 늘린다…. 3. 프로세서들 간의 연결을 늘린다…. 4.  현존하는 연결을 따라 이동할 자유를 늘린다.

p 524
정보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라는 오래된 자유주의 이상과 혼동하면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졌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말할 인간의 권리를 보호했다…. 반면 정보의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에 주어진다. 더구나 이 새로운 가치가 전통적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포될 권리는 인간이 정보를 소유하고 그 흐름을 제한할 권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p 530
자기만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완전히 쓸데없는 짓으로 보인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것을 왜 쓰는가? 새로운 모토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우리가 경험을 분주하게 데이터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추세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과 시스템에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가치는 경험을 하는 데 있지 않고, 경험들을 자유롭게 흐르는 데이터로 전환하는 데 있다.

p 543
21세기의 검열은 사람들에게 관계 없는 정보들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 조사하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Author: Official PEAK15

충분한 가치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마케팅과 브랜딩의 문제로 정상에 서지 못하고 있는 기업고객을 위해 Consulting과 Facilitation Service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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