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기사: 우리의 말과 글

particles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 대한 기사 세 개를 엮었다.

국어기본법 제20조(한글날) ① 정부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

 

사어가 아닌 이상 언어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좋은 말과 글을 갖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바꾸는 것이다.

 

첫 기사는 맞춤법, 그중에서도 띄어쓰기 규칙을 다루고 있다. (띄어쓰기의 난해함에 대한 기사는 이 기사를 참조 前 국립국어원장의 고백 “띄어쓰기, 나도 자신 없다”)

두 번째 기사는 하나의 문체로 자리잡은 ‘개조식’ 글쓰기를 다루고 있다. 공공영역의 일을 가끔 하면서 관련 서류를 검토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많이 괴로웠다. 많이,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기사는 존댓말을 정조준하고 있다. 자신의 상대적 지위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존댓말의 속박과 폐해에 대한 지적이다.

 

올바른 띄어쓰기 규칙: “자신의 호흡에 맞게”

한글은 ‘모아쓰기’ 글자입니다. 덕분에 띄어쓰기를 안 해도 문장을 읽고 쓸 수 있는 우수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반면 영어는 ‘풀어쓰기’라서 반드시 띄어쓰기해야 합니다. ‘topin’으로 붙여 쓰면 ‘to pin(투핀)’ ‘top in(탑인)’ 중 어느 쪽으로 읽고 발음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래 마틴 루터킹 목사의 연설문 중 일부를 보면 거의 읽기가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한글은 모아쓰기라서 ‘탑인’은 누가 읽더라도 ‘탑인’으로 읽게 됩니다. 그래서 띄어쓰기가 없더라도 정확한 발음으로 읽기가 가능하고, 문맥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피천득 선생의 ‘인연’ 중 일부입니다.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 없이도 읽는 데 어려움이 없고, 내용 이해에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당연히 훈민정음 때부터 조선 시대에 발간된 책들을 보면 띄어쓰기가 없습니다. 춘향전 경판본 등을 검색해 찾아보세요. 띄어쓰기 없습니다. 그래도 읽는 데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음절이 그대로 읽히니 내용 이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가끔 띄어쓰기 필요성 말하면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예로 드는 사람이 있는데, 문장은 문맥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배 상태는 어떠냐?’에서 배가 먹는 배인지, 타는 배인지, 신체의 배인지는 앞뒤 문맥으로 파악하는 겁니다. 조선 시대 소설 한 권을 읽고 쓰는 데 아무 문제 없었는데 앞뒤 없는 극단적인 예 한두 가지로 띄어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자백하는 꼴입니다.

 

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계속 보고서를 읽다보니 이내 허전해졌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다. 5대 목표를 정하고, 20개 전략을 도출하고, 100대 과제를 제시하는 방식이 너무 도식적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과제의 방대한 범위에 비해 내용의 밀도가 떨어져서 그럴까. 보고서를 이리저리 넘겨보다 깨달았다. 내용보다 형식의 실패다. 글쓰기 양식에 결함이 있다. 이른바 ‘개조식’ 글쓰기로 이런 중요한 내용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무리라 보았다. 개조식 글쓰기란 우리나라 공무원이 공문서 작성에 사용하는 특유의 관료주의적 글쓰기 방식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의 박용찬 연구원에 따르면, 개조식이란 용어 자체는 아마도 일본어의 ‘항목으로 나누어 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개조식 글쓰기의 가장 큰 결함은 격조가 없다는 데 있다. 문장의 내용이 명료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과 태도도 천하다. 비유컨대, 귀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모셔놓고 단백질과 비타민 복합제를 종이봉투에 담아 건네는 식이다.

이는 정부부처 간 메모를 교환할 때 채택할 수는 있어도,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정책적 소통을 하겠다면서 사용할 글쓰기 양식은 아니다. 국민 주권시대를 선언하고 실질적 주권자인 국민에게 진정성 있게 소통하겠다는 정부가 국민 앞에서 향후 5년을 다짐하면서 사용할 글쓰기 양식은 더욱 아니다.

 

한국어에 불만 있다

한글날 기념 방송에서 아름다운 모국어를 찬양하거나 표준어 수호를 맹세하지 않고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한글날은 며칠 지났지만 이야기를 이어 본다. 나, 한국어에 불만 많다. ‘파릇파릇과 푸릇푸릇을 구별하면 뭐하나, 쓸 만한 2인칭 대명사가 없는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극히 엄격하고 까다로운 존댓말-반말 체계에 대해서만 적어보려 한다. 그 얘기만 하기에도 지면이 모자란다….

이 언어를 쓰다 보면 세상에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진다. 교실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아무리 배워도 소용없다. 일상의 언어가 ‘실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깨워준다. ‘아랫사람’에게 굴욕감을 주기도 굉장히 쉬운 언어다. ‘갑질’의 핵심이 그거 아닌가.

한국어 사용자들은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그렇게 상대와 자신의 지위를 확인한다. 너는 나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나는 너에게 존댓말밖에 쓰지 못할 때 나는 금방 무력해진다. 순종적인 자세가 되고 만다. 그런 때 존댓말은 어떤 내용을 제대로 실어 나르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도전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렇게 한 사람의 머리 안에 갇혀 사라진다.

이 언어는 존댓말을 쓰는 사람에게만 복잡한 규칙을 강요한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라는 표현이 잘못이라고 한다. 사람을 높여야지 왜 사물을 높이냐고. 그러면서 밥, 집, 나이를 진지, 댁, 연세로 높인다. 대화 중에 다른 사람 얘기가 나오면,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상대와 제3자 중에 누가 더 높은지도 얼른 따져야 한다.

 

 

Author: Official PEAK15

충분한 가치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마케팅과 브랜딩의 문제로 정상에 서지 못하고 있는 기업고객을 위해 Consulting과 Facilitation Service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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