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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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의 글은 매우 재밌지만 그렇다고 -킬링 타임용으로- 술술 읽히는 내용이 아니다. 독특하다. 이 책 역시 다르지 않아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으나 한 번에 쭉 읽어내려가기에는 벅찼다. 글을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숨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게 필요했던/내가 반응했던 단 한 단락만 꼽으라면 이 부분일 것 같다.

과거의 특정 문화, 전통, 혹은 텍스트를 너무 성급하게 혐오하면, 그 혐오로 인해 그 혐오의 대상을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혐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저자는 텍스트(고전)에 적용했지만 나는 사람, 조직, 종교 이런 것들에게 두루 적용하게 된다.


(이미지에서 텍스트를 추출하는 구글의 기술력이 완전 훌륭한 것을 최근에 알게되었다. 앞으로 텍스트의 캡쳐량이 늘어날 것 같다.)

제한된 시간 내에 상호 충돌하는 언술을 한다면 그것을 모순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상호 충돌하는 언술을 한다면, 그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어느 날 누군가 당신을 대머리라고 비웃고 나서, 곧이어 사람 외모를 가지고 놀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언명일 것이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그가 사람 외모를 가지고 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그는 모순되는 언명을 한다기보다는, 그 10년 동안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모순을 지적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생애사적 연구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상사 연구가 생애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

로맨틱한 사랑에 대해 논하기를 꺼린 공자가 더 공개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호오好惡의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정확한 미움의 문제였다. 『논어』에 묘사된 공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판하는 일에 대해 사뭇 당당하다. 실로 『논어』에는 많은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실려 있다. 『논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어떻게 모든 이를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라는 정교한 미움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도가 원하는 결과를 맺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위선을 떠는 모습 말고 별도의 자아란 없다’ (峰註; 커트 보니것이 이런 글을 썼다는데 궁금해서 원문을 찾아나섰다. We are what we pretend to be, so we must be careful about what we pretend to be. 이거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맥락으로는 비슷한 얘기인 것 같다. who가 아니라 what으로 we를 받는다.)

신이 침묵할 때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 공자에 따르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 들지도 말고 신과 거래하려 들지도 말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들지도 말고 완전히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도 말고 신을 무시하지도 말고 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고 신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간에게 허여된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뭔가 배울 의지가 없는 삶일수록 질문을 하자마자, 냅다 “모르겠는데요!”라고 대꾸하고 고개를 숙여버린다. 무지를 선언하는 데는 나름의 쾌감이 따르므로…

편의점에서 시급을 받으며 일하던 윤아는 신생아실로 동생을 만나러 온다. 인큐베이터 안의 미숙아 동생에게 말을 건넨다. “사는 거 되게 빡세다. 각오는 돼 있어? 힘내!”

때로 아름다움은 초월자의 존재나 논리적인 언술만큼이나 강력한 정당화 기제이다.

상나라 때 청동 제기 중 무거운 것은 875킬로그램에 달한다. 그리고 그 정도로 큰 규모의 청동기 생산은, 그만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정치권력이 집중화되어야 가능하다.

우리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읽을 때, 어느 학자처럼 “그 쪼이는 고통도 컸겠지만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체내 암모니아의 농도가 높아졌을걸. 그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거야”라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

정치학의 ‘대의代議’라는 용어는 예술에서 ‘재현’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representation’을 번역한 것이다.

『논어』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유명하다기 보다는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고 만 것이다.

이미 유명한 대상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유명한 대상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어줄지 모른다. 그래서 저명한 사회과학자 시다 스코치폴은 “새 와인은 새 통보다는 이미 있는 통에 담는 것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대개 유명하고 익숙한 와인을 마시려고 들고, 유명하고 익숙한 텍스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석을 단다. 그렇게 발전한 주석사는 단순히 고전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담는 매개체가 된다.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획기적인 변화 중 하나는, 남송대(1127-1279)를 기점으로 시작된 특정 지방 엘리트의 성장이다. 북송대(960-1127)에만 해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직의 문호를 열었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거쳐 관리가 되는 일이 그토록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남송대가 되면, 지방에서만도 경쟁률이 100 대 1 혹은 그 이상으로 심해졌다.

남송대 이후로 현대 중국이 성립하기까지 약 8세기 동안 중국은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관리 수를 거의 늘리지 않았다. 그 긴 기간 동안 정부는 제한된 수의 관리만으 로 지방과 시장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비개입적 태도를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을 부과하였다. 청나라 후기에 한 명의 지방관이 담당했던 지방민은 20만~30만 명 정도였다. 이런 상태라면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이 토착민과 지방 엘리트들의 도움 없이 해당 지역을 일상적으로 통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하여 지방관들과 해당 지방의 엘리트들은 통치의 파트너로 상호 협조 관계를 맺곤 하였다.

이때 통치에 도움을 준 지방 엘리트 상당수가 바로 과거 시험 공부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끝내 될 수 없었던 지식인층이었다. 이들은 관리가 됨으로써가 아니라 지방 엘리트가 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열망을 실현 혹은 해소해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지방 엘리트로서의 자의식에 이데올로기적 자양분을 제공한 것이 이른바 성리학이다. 가 장 영향력 있는 성리학 이론가는 바로 그 유명한 주희였으 며, 그의 사상은 그가 새로 쓴 『논어』의 주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사람들은 ‘유교’라는 말을 지나치게 즐겨 사용한다. ‘유교’란 소위 한국 전통문화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사라져야 할 과거의 적폐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가부장적 질서와 동의어이기도 하고, 전근대적 요소를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기독교· 불교·이슬람교에 상응하는 동아시아의 종교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냥 별 뜻 없이 사용되는 ‘아무 말’이기도 하다. 유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게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사용 빈도를 볼 때 유교라는 말에 대한 사랑은 지나치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왜 그토록 유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일까?

일단 유교는 현대 한국 혹은 동아시아를 정교하게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설명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도맷값으로 떠넘길 때 유용하다. 유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 이 되고 말았어! 그뿐이랴. 현재 한국 사회의 성취를 설명할 때도 유용하다. 유교가 있었기에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어! 실로 유교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자칫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뻔했으니까. 유교라는 말이 느슨하게 사용되느니만큼, 유교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다양한 맥락에 대충 들어맞는다. 하나의 단어를 외어서 그토록 여러 맥락에 쓸 수 있다면, 사용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용어를 학습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된다. “우왕”이라는 한마디 말로 음식도 주문하고, 사랑도 고백하고, 연설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우왕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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