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Posted by


작년 여름, 코로나가 잠시 뜸했을 때 해방촌의 독립서점 투어를 했다.
그리고 거의 100만 년만에 시집을 한 권 샀다. 시집의 제목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시집이, 다 읽지 못한 그 시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8개월 만에 다시 나타났다. (가구 배치를 바꾸다가 침대와 벽 사이에 조난되었던 시집을 발견했다.)

표제작 [장마]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종이를 구겨버리고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본 투 비 산문 스타일’인 나는 시를 잘 읽지 못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질이 바뀌고 식습관도 바뀌는 것처럼 읽는 스타일도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시제(時制)의 혼선이 만드는 가벼운 혼란과 긴장감, 수맥-익사-장마로 연결되는 어떤 분위기. ‘좋았다’라는 느낌의 이유를 찾다보면 나의 ‘좋았다’가 위축되기 시작한다. (그만하자.)

아마도 나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OO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패러디를 자주 만들어 발신할 것 같다.
LG 트윈스 개막전, 매트릭스 4, 그리고 코로나의 종식…
내 주변 수신자 거의 대부분은 나의 짧은 메시지가 패러디인 것을 알아차릴 것 같지 않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누군가와 물끄러미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 경험.
내 기억 속에 분명히 있는(것 같은)데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