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SING AGAIN’

내게 ‘본방사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그리고 그 예외적 상황이 지난주 월요일로 막을 내렸다. 아주 오랜만에 ‘본방사수’ 모드를 만들어줬던 jTBC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대해 예우 차원에서 몇 자 적는다.

트로트의 민족 vs. 싱어게인

시청률이 보장되는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반면 MBC는 TV조선 [미스/미스터 트롯]의 미투 상품을 만들어 버렸고 그렇게 탄생한 [트로트의 민족]은 아류의 숙명을 벗어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마케팅으로 따지자면 [트로트의 민족]은 [미스/미스터 트롯]의 Market Share를 잠식하기 위한 포석에 가까웠고 [싱어게인]은 새로운 Category, Market을 창출하는 포석에 가까워 보였다.

새로운 브랜드/상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스탠스가 항상 New Category/Market 창출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연히 점유율 싸움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새로운 브랜드/상품의 생존률은 Market Share 중심의 접근일 때가 압도적으로 더 높다. (그만큼 새로운 시장과 카테고리를 창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트로트의 민족]은 많이 아쉽다. 그들은 ‘트롯 점유율’ 싸움에 집중해야 했을까? 유사상품이라도 만들어서 뒤늦게 점유율 싸움에 뛰어들려면 크게 두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큰 시장 사이즈다. 두 번째 그 시장의 성장성(최소 지속성)이다. 상당 기간 성장할 큰 시장 사이즈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점유율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미스/미스터 트롯]의 연이은 성공과 압도적 시청률은 MBC의 선택(트롯 점유율 경쟁)이 합리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과연 그럴까?

시청률? Think again

자료를 찾아보니 ‘싱어게인’의 최고 시청률(전국)은 10.062%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대에 방영되었던 ‘트로트의 민족’이 기록한 15.8%에 비교해도 한참 모자란 스코어다. (그런데 말입니다.) 2021년의 TV 시청률은 2000년대 초반의 닐슨 화장품 시장 리테일 인덱스와 같은 존재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초반, 화장품 전문점의 경로 비중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고 -닐슨 리테일 인덱스가 커버하지 못하는- 온라인/로드샵 경로의 비중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닐슨 리테일 인덱스가 제공하는 시장 점유율을 믿는 것은 바보짓이었으나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바보가 있었다. 현재의 시청률과 관련한 방송가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우리 집에는 한 대의 TV가 있고 10여 대의 유튜브/넷플릭스 시청이 가능한 디바이스가 있다. 우리집에서 영상 콘텐츠가 소비되는 총시간 중 TV가 점유하는 시간은 10% 미만일 것 같다. 더군다나 TV를 켜더라도 공중파나 케이블을 보는 시간보다는 TV 화면을 통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 더 많은 패턴이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다면 개선시킬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시청률은 여전히 측정이 가능한 지표이나 관리나 개선의 근거로 사용할 만한 권위, 효용성은 거의 상실했다. 효용성을 잃어버린 의미없는 지표를 나침반으로 사용하는 비즈니스가 순항할 가능성은 없다. (노인시장에 국한한 지표로 사용하는 데에는 찬성) 참고로 2021년 2월 22일 기준으로 ‘트로트의 민족’, top 3 동영상의 누적 조회수는 797만 회(592만 + 133만 + 72만)다. 같은 날 기준으로 ‘싱어게인’의 55호 가수가 부른 ‘we all lie’는 1,871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시청률이라는 개념, 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게 미디어는, 실제 세계는 흘러가고 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심사위원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뭔가 모르게 자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반발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래? 댁들이 더 잘해? 그럼 직접 해보시던가.) 여기에 누군가가 ‘서바이벌’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 다수가 탈락자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포장해도 본질은 냉정한 各自圖生의 세계다. 내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았던 이유의 6~7할이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싱어게인’의 심사위원은 많이 달랐다. 그들은 시종일관 경연자와 (음악이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의 관점, 스탠스를 놓치지 않았다. (同舟相救) 그런 측면에서 모든 심사위원이 훌륭했고 그중에서도 작사가 김이나의 메시지는 여러모로 특출나게 훌륭했기 때문에 여기에 링크를 남겨두고자 한다. (특히 이소정, 이승윤에게 한 말)

이승기의 재발견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요즘 대세인- 전현무나 김성주였다면 어땠을까? ‘싱어게인’의 전반을 지배하는 同舟相救 의 스피릿은 없어졌거나 희석되었을 것 같다. 앞서 얘기했듯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세계관은 일차적으로 各自圖生이다. ‘싱어게인’에서도 이 원칙적 세계관은 여전하지만 同舟相救라는 보완적 세계관, 연대의 세계관이 동시에 작동한다. 그리고 이 어려운 형용 모순적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이승기는 탁월했다. 감정이입은 기본이고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고 부러워도, 부끄러워도 하고 열성관객이 되어 환호성도 지르고 심지어 무릎도 꿇었다. 가수로서도, 연기자로서도, 예능인으로서도 이승기를 주목해서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승기를 완전히 다르게 평가하게 되었고 요즘엔 이승기의 노래도 듣는다. 그가 시즌 2와 함께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again ‘sing again’, 시즌 2여 어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