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소리하는 까칠한 리더, 그가 이끈 조직이 안전한 이유

THE LAB h® 의 김호 대표와 PEAK15의 김봉수 대표가 공동으로 작성한 글, ‘뼈 때리는 소리하는 까칠한 리더, 그가 이끈 조직이 안전한 이유’가 DBR 297호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알라딘US: DBR 동아 비즈니스 리뷰 Dong-A Business Review Vol.297 ...

이 아티클에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과 리더십 분야의 대가인 워런 베니스, 노엘 티시, 그리고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 등이 등장합니다.

결론 부분을 발췌, 게시합니다.

과거 성과주의는 높은 매출 목표를 강요하면서 낮은 심리적 안전감을 감수하는 모델이었다. 이제 그런 방식으로 성과주의가 작동하기는 어려워졌다. 장기근속이 보편적 직장생활이라 믿었던 과거의 직장 환경과는 달리 장기근속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밀레니얼세대는 훨씬 짧은 주기로 직장생활의 손익계산서를 운용한다. 그들에게 ‘참고 견디라’는 말은 조언도, 지혜도 되지 못한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새로운 팀과 조직을 이끌게 됐을 때 무엇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백 단장은 뚜렷한 관점, 데이터 기반의 꼼꼼한 인물 판단력, 판단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력, 엄격함을 통한 심리적 안전감과 높은 업무 수행 기준을 제시하라고 말하고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이 시대에 높은 심리적 안전감과 높은 업무 수행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에 대해 스토브리그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Homo Underliner: 두려움 없는 조직

영문 부제는 ‘Creating Psychological Safety in the Workplace for Learning, Innovation, and Growth’라고 되어있고우리말 부제는 ‘심리적 안정감은 어떻게 조직의 학습, 혁신, 성장을 일으키는가?’로 되어있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말 버전은 ‘Psychological Safety 가 학습, 혁신, 성장을 만든다’는 뉘앙스, 즉, 인과관계 관점이 강하다면 영문 버전은 상관관계 정도 이상의 해석은 허락하지 않는다. 본문도 마찬가지다. PS가 보장되지 않았을 때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에 대한 사례가 풍부하게 제시(노키아, 폭스바겐, 컬럼비아 호…)하는  동시에 PS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심리적 안정감이 보장된다고 해서 높은 성과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건 아니다. 아니 결단코 그렇지 않다.’ p 145)

개인적으로 꼽는 이 책의 핵심은 ‘심리적 안정감에 대한 몇 가지 편견들’이라는 챕터다. (pp 138-145)  그중에서도 ‘심리적 안정감이 성과의 기준까지 낮추진 않는다’라는 대목이 흥미롭고 논쟁적인데 애석하게도 심리적 안정감과 높은 업무 수행기준이 공존하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와 이를 위한 방법론은 상대적으로 꼼꼼하지 않은 편이다. 이 대목의 몇몇 문장을추려본다.

  • 심리적 안정감은 친절함이나 상냥함과 거리가 멀다. 비슷한 맥락으로 편안함이나 안락함을 뜻하지도 않는다. 오히려듣기에는 조금 거칠고 쓴 말일지라도 생산적인 갈등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 심리적 안정감과 신뢰감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지만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방향성이다. 심리적 안정감은 특정 개인이 아닌 ‘조직 전체’를 향한 감정이다…. ‘신뢰감’은 특정 조직이나 개인을 향해 기대하는 장기적인반응과 관계가 있다면 ‘심리적 안정감’은 좀 더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반응과 관계가 있다…. 문제 제기의 혜택이 타인을 향해있다면 이는 신뢰감과 관련이 있고 그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라면 심리적 안정감과 관련이 있다..
  •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고 해서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구성원에게까지 면죄부를 준다는건 아니다.
  • 오늘날 수많은 관리자가 심리적 안정감의 효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업무 수행 기준을 낮추진 않을까 우려한다. 모두 심리적 안정감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탓이다…. 심리적 안정감과 업무 수행 기준이 서로 별개의 영역이라는 걸보여주는…
  • 심리적으로 안전한 근무 환경을 만들어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문제를 충분히 예방한다. 또한 가치 있는 목표를 세워지속적으로 공유하면서 다듬어가는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 지식 기반 산업에서는 예전처럼 공장의 조립 라인을 확인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구성원의 역량을 평가할 수는 없다… 리더는 조직을 감독하는 동시에 다양한 영감과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구성원에게 보람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동기를 부추겨야 한다. 또한 조직 안에서 각종 도전 과제와 우려 사항, 기회에 관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환경을 구축해 끊임없이 혁신하는 것 역시 오늘날 리더에게는 가장 중요한 임무다.

‘Psychological Safety’을 ‘심리적인 안정감’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맞지 않는 것 같다.(그래서 직접 인용이 아닌문장에서는 ‘PS’라고 표기했다.)

망한(크게 사고를 친) 기업을 리뷰할 때 유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론/방법론인 반면에 무언가를 성취하는 유력한 방법론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위기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론, 논리로는 훌륭하다.)

그 밖의 언더라인

  • 진정한 의미의 실패는 실패한 현실 그 자체와 실패 후에 성장하게 될 모습까지 모두 인정하는 것
  • 인간은 사회적 상호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여러 정보를 조정하고 통제함으로써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려 한다. (어빙 고프먼)
  • 직장에서 의견을 제시할 때 작동되는 암묵적 규칙(p 53)
  • 프레임은 ‘실제로 일어난 상황’에 우리의 ‘가정과 믿음’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
  • 실패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 ‘예방 가능한 실패’, ‘복합적 실패’, ‘창조적 실패’로 구분
  • 지금껏 리더는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 지시하는 사람, 그리고 지시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내용을 평가할 수 있는사람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프레임에서는 리더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그저 주어진 지시에 순응하는 ’부속품’에 지나지않는다.
  •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엔지니어를 비롯해 모든 임직원을 회의실로 소집합니다. 그리고는이렇게 선포하세요. “형편없는 구닥다리 모델은 이제 지겨워! 앞으로 6주의 시간을 줄 테니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을뽑아오도록! 당신들 이름은 여기 다 있어. 6주 후에 제대로 된 게 안 나오면 모두 쫓겨날 각오해!” (포르셰의 손자이면서폭스바겐의 전 회장이자 최대 주주인 페르디난도 피에히의 심리적으로 불안한 환경을 조성해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
  • ‘자신감’과 ‘겸손’이 서로 반대되는 말은 아니라는 것…. 지식과 역량이 충분한 리더라면 가식적인 겸손을 보여주는것보다 오히려 자신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게 훨씬 효과적… 겸손은… 내가 모든 답을 알고 있지는 않으며 내 말이 곧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
  • 대안 범위의 확장을 위한 질문 (우리가 놓친 건 없을까요?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누구 다른 생각을 가진 분없나요?)
  •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한 질문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요?
  • 여러분 제 말에 집중하지 않으셨군요. 모두가 찬성하는 의견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모두 처음으로 돌아가 제 의견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p 126, MTV 설립자 밥 피트먼)
  •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고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웰스파고의 직원들은 반대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에서 근무했고 경영진은 그런 그들에게 오직 하나의 메시지만 주입했다. ‘팔아라, 못 팔면 해고다!’
  •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의 규칙. 첫째, 평가 내용은 반드시 건설적이어야… 둘째, 브레인트러스트에서 나온 의견은 단지제안일 뿐 확실한 처방이 아니다. 윗선의 지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도 아니다. 영화의 최종 책임은 감독에게 있으며…. 셋째, 평가는 흠을 들춰내는 과정이 아니다. 영화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동료들의 조언은 꼭 필요하며 그 조언은 당사자가 입 밖으로 꺼냈을 때만 유효하기 때문
  • 당시 우버를 지배하던 핵심 가치는 ‘강한 열정’이었다. 이는 ‘할 수 있다’는 자세와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마음가짐을 포함하며 야근 등 장시간 근무가 이에 해당했다. 또 다른 핵심 가치는 ‘대범한 실행’이었다. ‘허가를 얻기보다는 용서를 비는 게 낫다’는 신념이다.
  • 회의가 늘어지는 이유는 간접적인 화법과 은근한 비판, 사적인 빈정거림이 오갔기 때문이었는데 그 결과로 몇 시간이면 결정날 사안이 몇 달씩 지연되곤 했다.
  • ‘여전히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 독불장군처럼 굴지만 성공하는 리더’에 대한 재반박 관련 내용 (pp 222-223)
  • 자동차 업계의 제왕으로 불린 헨리 포드는 이렇게 불평했다. “아니 손발만 들고 오랬더니 왜 머리까지 달고 오는 거야!”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리고 심려를 끼쳐 드리기도 했습니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사과 드립니다. 

저는 오늘 반성하는 마음으로 삼성의 현안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그 동안 가져온 제 소회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항상 우리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 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입니다.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합니다. 그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회에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습니다.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은 데다가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노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습니다. 그래서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습니다. 

시민사회 소통과 준법 감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입니다. 기업 스스로가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먼저 한걸음 다가서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습니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입니다.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의 오늘은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입니다. 임직원 모두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고 많은 국민들의 성원도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최근 2∼3개월 간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저는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목숨을 걸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나선 의료진, 공동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많은 시민들, 이런 분들을 보면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또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제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선’은 ‘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남양유업, 대한항공과 삼성을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사과문을 ‘위선’으로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한국 버전의 ‘마그나 카르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상당히 봉건적인 인식인 것 같다.

나이키가 작별하는 방법

#1.
마리아 사라포바. 32세. 오늘 은퇴했다. 나이키의 트윗 계정이 고른  마리아 사라포바의 사진은 예쁘게 웃는 얼굴이나 환희에 차있는 챔피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텐션 가득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사라포바의 얼굴은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은퇴하는 선수에게 어울리는 사진(수고했어요! 사라포바. 이런 느낌)은 분명 아니다. 흑백의 마리아 사라포바 얼굴 위에 뿌려진 하얀 텍스트를 읽어보면 나이키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사람들은 네가 더 웃기를 원했어.
사람들은 네가 좀 더 공손해지길 원했어.
사람들은 네가 좀 더 부드럽게 악을 쓰길 원했어.
사람들은 네가 경기에서 이겼을 때 덜 공격적이기를 원했어.
사람들은 네가 실수를 했을 때 뒤로 물러서길 원했어.
하지만 너는 단지 게임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선수가 되는 대신?
게임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었지.

(번역에 도움을 주신 THE LAB h 김호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미모의 여성 테니스 선수는 커리어 내내 세상의 편견, 선입견, 암묵적 강요에 직면했다. 나이키는, 이에 질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마리아 사라포바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녀와 작별했다. 정상급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에는 동시대의 시대정신이 잘 녹아있다.

#2.
얼마 전 코비 브라이언트가 갑작스러운 헬기 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이키의 트윗 계정은 사고 당일 코비 브라이언트의 부고를 전하며 애도를 표했다. 전혀 준비된 부고가 아니었겠지만 이미지도 ,텍스트도 훌륭했다. 추도사에 포함된 이 문장이 진심이었기에 가능한 속도이고 퀄리티 아니었을까. (He was a beloved member of the Nike family.) 정상급 브랜드는 계약관계 이상의 관계를 맺는다.

#3.
검은 화면에 Forever라는 하얀 텍스트가 고정되어 있다. Forever와 댓구를 이루는 20여개의 텍스트가 코비 브라이언트의 삶, 농구를 기록하고 기억한다. 1분 56초 분량의 코비 브라이언트 연대기. 그의 기념비적인 순간과 키워드가 당시의 사운드 클립, 인터뷰와 함께 점멸한다. 보여주고 싶었을 경이적이고 화려한 장면들이 10테라는 족히 넘었을 텐데 몽땅 다 날려버렸다. 검은 배경과 하얀 텍스트로 오로지 코비 브라이언트에 집중했고 그들은 완벽히 성공했다. 2월 24일에 나이키가 공개한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 동영상은 코비의 팬이 아니며 심지어 농구 팬도 아닌 나 같은 사람까지 울컥하게 만든다.  정상급 크리에이터가 제일 잘 사용하는 수학 기호는 -, 빼기다. (위대한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명복을 빈다.)

나이 들면 머리 굳는다? 아니, 뇌는 변화한다 -가소성

기사원문 링크

2016년 8월의 기사다. 그새 뇌과학은 또다른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밝혀냈겠지만… 희망적인 몇몇 포인트를 정리해 둔다. (‘Use it or Lose it’이 희망의 메시지인가, 절망의 메시지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일단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희망 or 절망은 해석, 다짐의 영역이기도 하다.

가소성은 양날의 칼이다. 학습한 결과(가소성의 성과)를 기억하고 사용하려면 뇌 회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가소성은 필연적으로 안정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빨리 학습하는 극도로 유연한 뇌는 아무것도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뇌가 된다. 인공신경망에서 학습률(learning rate)를 높게 설정해두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학습률이 높은 인공신경망은 최근에 입력된 자료의 영향을 너무 크게 받은 나머지, 이전에 학습한 것들은 죄다 잊어버린다. 세심하게 안배된 뇌의 발달 단계를 보노라면, 다 살라고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동안에 이미 만들어진 회로가 바뀌기도 한다. 결정적 시기란, 발달 단계에서 특정한 능력을 습득하기에 대단히 중요한 시기를 뜻한다. 예컨대 언어의 결정적 시기 동안, 뇌는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어에 관련된 뇌 회로의 가소성이 증가해서 언어 습득에 유리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언어에 관련된 뇌 회로들이 안정화되면서 언어 습득이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결정적 시기가 끝나면 뇌 회로를 더이상 바꿀 수 없다고 여겼다. 해당 뇌 부위의 가소성은 결정적 시기가 끝남과 함께 끝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 시기가 지난 뒤에도 경험에 따라 뇌 회로가 바뀌는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이런 생각이 변하고 있다. 이미 닫힌 결정적 시기를 재개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결정적 시기라는 강한 표현 대신에 민감한 시기(sensitive perio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뇌에서 구조와 동작은 분리하기 어렵다. 뇌의 활동은 구조적인 변화를 동반하며, 구조의 변화는 동작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니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거나 경험과 연습을 통해 뇌의 작동 방식이 변하면 구조도 함께 변한다.

‘뇌 가소성’의 원리들은 변화의 방향을 주도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준다.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들을 없애는 과정인 시냅스 가치치기에서 알 수 있듯, 뇌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약해진다(“Use it or Lose it”). 반면에 연습은 뇌의 구조를 바꾸어 점점 더 능숙해지도록 만든다. 우리는 앞에서 2시간의 자동차 게임 전후의 뇌와, 런던 택시 운전기사의 뇌를 통해 연습이 실제로 뇌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을 확인했다.

Homo Underliner: 최명길 평전

조선시대 왕의 사과문

*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을 나온 인조는 홍타이지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행한다. 같은 해 2월 19일, 민심의 동요가 심상치 않자, 인조는 백성들에게 아래의 사과문을 발표한다.

“덕이 부족한 내가 대위에 있은 지 이제 15년이 되었다. 운명이 험한 데다 국사에 어려움이 많아 잇따라 변고를 당해 두 번이나 파천했으니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친 것이 이미 적지 않은데, 하늘이 바야흐로 재앙을 내림에도 과거의 간난을 반성하지 못했다.
돌아보건대 내가 깊이 통탄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백성을 기르는 직책에 있으면서 스스로 도를 잃어 나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만백성들에게 화를 끼쳤다. 난을 구하러 달려온 군사들을 전쟁터의 원혼이 되게 했고, 무고한 백성들을 모두 이역의 포로가 되게 하여 아비는 자식을 보호하지 못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지 못해 곳곳에서 가슴을 치며 하늘에 호소하게 했으니, 백성의 부모 된 자로서 장차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인가? 이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머금고 오장이 에는 듯하여 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제 묵은 폐단을 통렬히 징계하고 가혹한 정치를 모두 없애며, 사사로운 당파를 제거하여 공도를 회복하고, 농사에 힘쓰고 병졸들을 쉬게 하여 남은 백성을 보전하려 한다. 아, 너희 팔도의 사민과 진신대부들은 나의 부득이했던 사연을 양해하고 이미 지나간 잘못 때문에 나를 버리지 마라. 상하가 합심하여 어려움을 널리 구제함으로써 천명이 계속 이어져 우리 태조와 태종이 남기신 유업을 떨어뜨리지 말도록 하라.”
한명기, <최명길 평전>

서울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 프로젝트(2014)를 진행할 때 (지방)정부의 사과문이 포함해야 할 요소에 대해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 Care/Concern;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
– Action;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취할 조치
– Perspective; 위기에 대한 해석/전망

인조의 사과문은 2014년에 작성된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제대로 된 사과문이다. 300년 이상의 시간적 격차와 군주제와 공화제라는 정체(政體, regime) 차이를 고려한다면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사과문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의 백성들에게 위안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시인 김소연은 <마음사전>에서 이렇게 적었다.


‘처참함은 너덜너덜해진 남루함이며 처절함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괴로움이며 처연함은 그 두가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했을 때의 상태다. 처참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정황이라면 처절함은 차마 손댈 수 없는 정황이며 처연함은 눈뜨고 볼 수도 있고 손을 댈 수도 있지만 눈길도 손길도 효력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는 상태다…. 처참함 때문에 우리는 죽고 싶지만, 처절함 때문에 이 악물고 살고 싶어진다. 처연함은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어서 죽음처럼 살고 삶처럼 죽게한다.”

처참과 처절과 처연이 중첩된 1637년의 조선 백성들에게 인조의 사과문은 무슨 의미였을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명기 교수의 <병자호란>과 이번에 새로 나온 <최명길 평전>을 읽어보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진짜 ‘헬조선’이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영역의 하나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위기 커뮤니케이션이 디폴트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 존재의 이유는 여전하겠지만 그럼에도 개운치 않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색 블루

사람은 참 신기한 존재다.

사람의 모든 지각 활동은 뇌로 귀결되고 뇌는 언어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에 적당한 이름이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왜 ‘파랗다’가 때로는 blue, 때로는 green을 의미하는지… 왜 명백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두 색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주 재밌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러한 ‘인식의 장애’가 단지 색깔에 국한될까 싶다. 인권, 폭력, 혐오, 차별, 페미니즘… 이런 개념도 분명히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의 뇌는 처리할 것이고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파랗다’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왜 전통 동양화가들은 하늘에 파란색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동아시아의 ‘청색’이 파란색과 녹색을 모두 의미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화권에서 녹색과 파란색은 같은 계열로 취급된다. 그런데 청색의 일부를 녹색으로, 다른 일부를 파란색으로 구분하는 것은 각각을 다르게 가리키는 이름이 생긴 후부터 가능해진다. 

그런데 왜 하필 파란색일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색을 일상적으로 보는 현대인들이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자연에서 파란색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파란색 꽃은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교배해서 만들어낸 것이고, 6만4000종의 척추동물 중에서 몸에 파란색을 지니고 있는 종은 단 2개에 불과하다.

색과 언어를 연구하는 가이 도이처라는 학자에 따르면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색 이름이 어휘에 등장한 순서는 거의 일정하다고 한다. 흰색과 검은색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그 뒤를 이어서 빨간색이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거의 예외없이 노란색과 녹색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파란색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인류는 자연에서 본 색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 수 있는 색에 이름을 붙였다. 특정 색상, 즉 염료를 꾸준하게 생산 가능해진 후에야 비로소 그 색을 가리키는 이름이 생겼는데, 뒤로 갈수록 만들어내기 힘든 색이었던 것이다. 주요 색상 중에서 자연 속에서 가장 찾기 힘든 파란색은 가장 만들기 힘든 색이었고, 그렇다 보니 어휘에도 가장 늦게 등장했고, 어휘에 등장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파란색을 보면서도 파란색으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Homo Underliner: 정확한 사랑의 실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세 단계를 차례로 밟아가는 일이다. 그 세 단계를 각각 ‘주석’ ‘해석’ ‘배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우리는 우선 텍스트가 다루고 있는 것들의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고(주석),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서 텍스트의 ‘의미’를 추론해내야 하며(해석), 이렇게 추론된 의미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를 평가하면서 그 텍스트가 놓일 가장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배치).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람의 실험]을 읽다가 그가 하는 일(읽기와 쓰기)과 내가 하는 일(인터뷰와 퍼실리테이팅, 컨설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쉽게 ‘유죄추정의 원칙’에 몸을 싣는다.

그러하다. 이하의 인용도 역시 그러하다.

좋은 이야기는 어떤 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하느라 투자한 노력을 대개는 회수한다.

많은 훌륭한 이야기들의 원천이 대체로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인 것은 왜인가. 말년의 프로이트는 인간이 행복해지기보다는 불행해지는 데 더 많은 재능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착잡하게 인정해야만 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려는 의도는 ‘천지창조’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문명 속의 불만], 1930, 2장) 세 종류의 고통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것. 자주 고장나고 결국 썪어 없어질 ‘육체’, 무자비한 파괴력으로 우리를 덮치는 ‘세계’, 그리고 앞의 두 요소 못지않게 숙명적이라 해야 할 고통을 안겨주는 ‘타인’이 그것들이다.

저자와 나의 공통 관심사는 유의어, 사이비(나쁜 의미가 아니라 ‘유사하나 같지 않은’은 의미로서) 사이에서 정확한 개념과 명칭, 구조를 찾는 것

사랑이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는 본능, 충동, 욕망과 다른 것이라면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행위의 고유한 구조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애도mourning와 우울melancholy은 사랑해오던 대상을 상실했을 때 주체가 보이는 반응이라는 점에서는 일단 같다. 그러나 애도가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 대상에 쏟았던 에너지(리비도)를 철회하여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라면(그래서 ‘애도 작업’이나 ‘애도 기간’ 같은 말이 성립될 수 있다), 우울은 대상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그 대상과 동일시하면서 자기 파괴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다(그래서 애도와 달리 우울은 병리적인 현상이며 치료의 대상이 된다). 세부 논증은 생략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울의 경우 ‘상실’과 ‘자학’이 맺고 있는 이 기묘한 관계는 섬세한 해석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는 점이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빙산의 수면 밑에 있는 것이 나의 ‘본질’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 가능한 영역이 ‘진짜 나’다. 텍스트를 다루는 저자는 ‘형식’이라고 했지만 내 세계에서는 ‘behavior’다.

보통의 개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내용’보다는 ‘형식’쪽을 따져보는 게 옳을 것이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무렵에 아래와 같은 지점에 이르게 되면 결과는 거의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부정확한 사랑의 폐허로 보이겠지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래의 짧은 문장이 요즘 내게 필요한 메시지였던 것 같다.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을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항상 회의적(skeptical) 자세를 유지하되 전체적으로는 낙관적 전망으로 삶을 사는 것. 이 모순의 매커니즘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

Johnnie Walker with Game of thr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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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다. FMCG에서 이런 시도는 대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아래 링크를 보니 GoT의 팬인 한 개인의 프로젝트가 2017년에 이미 있었던 것 같다.

http://toddschreiberart.com/deadlabel/

팬과 브랜드의 의도하지 않은 비연속적 협업 또는 팬이 만든 seed를 브랜드가 상품화로 연결시킨 사례

 

 

필립모리스, 2018/10/04

정보공개 소송 – 감독기관에 대한 공격 사례

  • 아이코스, 히트스틱 등은 언급하지 않고 사명만(CI도 생략) 노출
  • “건강을 위한 최선은 흡연하지 않는 것이며, 정부의 금연 및 흡연예방 정책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계속 흡연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과학, 기술, 혁신에 기초한 더 나은 선택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Coombs의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전략 유형 중 가장 날이 선 ‘Attack the accusers’에 해당

 

경향신문_지면광고_2018-10-04